번개 때문에 가전이 망가졌다는 집은 주변에서 찾기 어렵습니다. 아파트라면 옥상에 피뢰침까지 있습니다. 그래서 서지보호 멀티탭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서지는 정말 번개가 칠 때만 생길까요?
번개를 맞은 적이 없어도 서지는 생깁니다. 오히려 집 안에서 더 자주 생깁니다.
집 안에서 생기는 서지
에어컨 실외기, 냉장고 컴프레서, 세탁기처럼 모터가 든 가전은 켜지고 꺼질 때마다 배선의 전압을 흔듭니다. 높은 전압은 꺼질 때 튑니다. 모터 코일에 흐르던 전류는 스위치가 끊겨도 잠깐 더 흐르려고 해서, 그 순간 배선의 전압이 치솟습니다. 수도꼭지를 급하게 잠갔을 때 배관이 쾅 하고 울리는 수격 현상과 같은 원리입니다. 켜질 때는 반대로 큰 전류가 한꺼번에 몰려 전압이 잠깐 내려갑니다. 냉장고가 돌기 시작할 때 조명이 살짝 어두워지는 이유입니다.
냉장고 컴프레서는 온도를 맞추느라 수시로 돌았다 멈췄다 하고, 세탁기 모터도 빨래하는 동안 여러 번 섰다가 다시 돕니다. 번개는 여름 한철 일이지만, 전압이 튀는 순간은 집 안에서 매일 되풀이됩니다.
1967년에 가정 수백 곳의 콘센트에 측정기를 달아 2년 동안 지켜본 조사가 있습니다. 큰 서지를 매일 겪은 집도 있었습니다. 모두 번개가 아니라 집 안 기기가 켜지고 꺼질 때 생겼습니다. 번개로 생긴 큰 서지는 여름 내내 다 합쳐 몇 번뿐이었습니다. 조사 숫자로 계산하면, 1,200V가 넘는 큰 서지만 놓고 봐도 집 안 기기 때문에 생긴 횟수가 번개 때문보다 10배 넘게 많습니다. 1,200V보다 작은 서지는 세지도 않은 조사입니다. 집 안 서지는 대부분 작아서 기기를 그 자리에서 망가뜨리지는 않습니다.
지금 집에는 1967년보다 모터와 전자 회로가 든 기기가 훨씬 많습니다. 에어컨과 냉장고에 김치냉장고, 건조기, 식기세척기까지 켜지고 꺼지는 가전이 많아졌고, TV와 PC, 보일러 제어기처럼 회로가 섬세한 기기도 집집마다 있습니다. 서지를 만드는 기기도, 서지에 다칠 기기도 함께 늘었습니다. 요즘 많이 쓰는 인버터 가전은 큰 서지는 덜 만드는 대신, 돌아가는 동안 전원선에 고주파 잡음을 계속 흘립니다. 이 잡음은 노이즈 필터가 맡습니다.
피뢰침이 지키는 것
아파트 옥상의 피뢰침은 건물을 지키는 장치입니다. 콘센트에 꽂힌 기기까지 지키지는 않습니다. 가정 전기 안전 안내서에도 피뢰침은 배선에 생기는 서지까지 막지 못한다고 나옵니다. 번개 보호 국제 규격은 건물이 부서지거나 불나는 것을 막는 부분과, 안에 있는 전기·전자 기기를 서지에서 지키는 부분을 따로 정해 두었습니다.
번개가 우리 동에 떨어지지 않아도
근처에 떨어진 번개도 전력선·전화선·케이블 방송선을 타고 높은 전압을 집 안까지 보냅니다. 2020년 포털 질문 게시판에는 지은 지 2년 된 대단지 신축 아파트에서 낙뢰 뒤 멀티탭에 꽂혀 있던 TV 셋톱박스와 와이파이 공유기가 망가졌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윗집과 근처 상가도 비슷한 피해를 봤다고 합니다. 셋톱박스와 공유기는 전원선 말고도 안테나선과 인터넷선으로 서지를 받습니다.
서지 보호가 하는 일과 못 하는 일
수천 V까지 튀는 큰 서지는 서지 보호 소자(바리스터)가 맡습니다. 정해진 전압을 넘는 순간 그 에너지를 옆으로 흘립니다. 스위치나 모터가 만드는 작고 빠른 튐(수백 V, 아주 짧게 여러 번)은 서지 보호 소자가 작동하는 전압보다 낮아서 그대로 지나갑니다. 이때는 노이즈 필터가 맡습니다. 전압 크기가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를 보고 거르기 때문에 작은 튐도 무디게 합니다.
멀티탭은 전원선만 지킵니다. 랜선·안테나선·전화선을 타고 들어오는 서지와, 건물이나 전선에 번개가 바로 떨어지는 직격은 맡지 못합니다. 정전이나 몇 초씩 이어지는 낮거나 높은 전압은 UPS(무정전 전원장치)나 전압조정기가 맡습니다.
| 무엇이 들어오나 | 크기와 길이 | 맡는 것 |
|---|---|---|
| 큰 서지 | 수천 V, 순간 | 서지 보호 소자 |
| 작고 빠른 튐 | 수백 V, 아주 짧게 여러 번 | 노이즈 필터 |
| 정전, 몇 초 이어지는 전압 이상 | 길게 | UPS, 전압조정기 |
| 직격뢰, 통신선 서지 | 매우 큼 | 피뢰설비, 통신선용 보호기 |
TV, PC, 게임기, NAS(네트워크 저장장치), 셋톱박스처럼 회로가 섬세하고 비싼 전자기기라면 서지 보호가 값을 합니다. 전기포트나 히터처럼 회로가 단순한 전열기는 서지 보호 우선순위가 낮습니다.
그린세이퍼는 어떤 구성인가요?
그린세이퍼의 서지 보호 소자는 약 470V를 넘을 때 작동합니다. 평소 220V 전기가 가장 높이 올라가는 약 311V보다 넉넉히 높게 잡았습니다. 작동 전압이 너무 낮으면 평소 전압 출렁임에도 반응해서 소자가 빨리 닳기 때문입니다. 그린세이퍼는 낙뢰 서지를 6kV 기준으로 시험합니다.
470V 밑의 작고 빠른 튐은 함께 들어 있는 노이즈 필터가 150kHz~30MHz 대역에서 무디게 합니다. 큰 서지는 서지 보호 소자가, 작은 튐은 노이즈 필터가 나눠 맡습니다. 직격뢰, 랜선·안테나선으로 들어오는 서지, 정전은 맡지 못합니다. 서지 보호 소자는 서지를 받을수록 닳는 소모품입니다. 교체 시기는 서지보호 멀티탭, 진짜 효과 있나요?에 정리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분전반에 서지보호기가 있는 아파트면 멀티탭은 필요 없나요?
A. 분전반 서지보호기는 밖에서 들어오는 큰 서지를 먼저 줄입니다. 에어컨이나 냉장고가 켜지고 꺼질 때 생기는 서지는 집 안 배선을 타고 가까운 기기에 먼저 닿습니다. 그래서 비싼 기기 가까이에 서지 보호를 한 단계 더 두시길 권합니다.
Q. 서지보호 멀티탭이랑 UPS는 뭐가 다른가요?
A. UPS는 정전이나 전압이 떨어질 때 배터리로 전기를 이어 줍니다. 서지보호 멀티탭은 순간적으로 높게 튀는 전압을 옆으로 흘려보냅니다. 두 장치가 하는 일이 다릅니다.
Q. 470V 밑으로 튀는 전압은 그냥 들어오나요?
A. 서지 보호 소자만 든 멀티탭이면 그렇습니다. 노이즈 필터가 함께 들어 있으면 작고 빠른 튐도 무디게 합니다.
이 글에서 확인한 자료
- NIST SP 960-6 「Surges Happen! How to Protect the Appliances in Your Home」 (Martzloff, 2001)
- IEC 62305-3·62305-4:2024 (Protection against lightning)
- Hahn·Martzloff 「Surge Voltages in Residential Power Circuits」 (GE 연구소, 1967)
- Martzloff 「Transient Overvoltages in Secondary Systems」 (GE 연구소, NIST 게시본)
- 네이버 지식iN 「아파트낙뢰로 인한 보상범위」 (2020-07-25)